본문 바로가기

철학

철학자 라이프니츠

천재들의 천재 라이프니츠 태어나다.

 

서양의;17세기는 천재들의 세상으로 불렸으며 그 천재들의 세상에 종결자는 라이프니츠라고 해도 과언이아닐 정도입니다.그는 미적분학의 창시자이며 언어를 사용하는 일반 논리학과 달리 기호를 사용하는 수리논리학의 기초를 만든이로 물리학에서는 에너지보존 법칙을 구상하고 심리학에서는 무의식을 처음 생각해낸 사람 입이다. 수 많은 업적에 비해잘 알려지지 않은 라이프니츠는 1646년 독일의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도덕철학 교수였습니다.아버지를 닮은 라이프니츠는 지적 호기심이 타고난 사람이었습니다.여덟 살때 혼자 힘으로 라틴어를 공부하여 아버지 서재에 있는 방대한 서적을 읽기 작하였으며 열세살이;되던;해에는논리학에서 아주 큰업적이 될만한 생각을 해낼 정도로 지적 발달은 엄청났습니다.그는 인간의 사고를 분석하여 생각을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를 밝혀내고 이들이 서로 결합하는 법칙을 알아내면 우리가 할수 있는 이유를 파악할 수 있으며 그것이 옳은 것인지 평가할 수있다고주장했습니다.
1661년 라이프니츠는 열다섯 살의 나이로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합니다. 라이프니츠는 매우 뛰어난 학생이었지만 박사학위를 받지 못하였는데 이유는 나이순으로 학위수여자를 결정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그가 졸업할 당시에는 논문을 완성하고도 어리다는 이유로 박사 학위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미 써놓은 논문을 들고 학문과 기술의 중심지로 떠오르는 알트도르프 대학으로 옮겨 법학 박사 학위를 받게 됩니다. 라이프니츠의 천재성을 알아본 알트도르프 대학에서는 교수직을 제안하지만 거절합니다. 스물한 살의 젊은 청년은 안정적이고 속박된 생활을 해야 하는 교수보다는 위험하더라도 새로운 일을 하며 세상을 몸으로 겪으며 익히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처음 시작한 일은 연금술을 연구하는 뉘튼베르크 학회의 총무직이었으며 뉴턴이 관찰과 실험으로 자연법칙을 밝히려 했다면 라이프니츠는 사고 실험을 통해 결합법칙을 밝히려는 듯 연금술에 관한 그의 관심은 평생이 직책을 오래 유지하지는 않았습니다.
1668년 그는 보이네부르크 남작의 추천으로 <법학의 학습과 교육의 새 방법> 이라는 논문을 마일즈의 선제후에게 헌정했습니다. 선제후란 중세독일에서 황제를 선출하는 자격을 가진 제후입니다. 마인츠의 선제후는 그의 뛰어난 재능을 단번에 알아보고 그에게 중세의 교회 법전을 모든 기독교 국가에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꾸는 작업을 부탁했습니다. 1670년 그의 나이 스물네 살에 신성로마제국에서 가장 중요한 법원 중 하나인 마인츠 선제후국 상고심 법원의 법관에 올랐습니다.

철학자 라이프니츠

공상과학자 라이프니츠

 

어느날 라이프니츠에게 최고의 학자들이 모이던 파리에 갈 기회가 생겼습니다. 최고의 학자들이 모인 이곳 파리에서 세계적 명성을 쌓을 기반을 마련하고 하위헌스 같은 최고의 수학자도 만나고 파스칼과 데카르트의 미출판 원고도 읽어보았습니다. 1673년 라이프니츠는 영국왕립협회를 외교관 자격으로 방문하고이곳에서 자신이 고안한 계산기를 선보여 관심을 끕니다 복잡한 톱니바퀴로 되어있는 이 기계는 뺄셈과 덧셈뿐만 아니라 나눗셈과 곱셈도 할 수 있었으며 그는 단수한 식 연산을 뛰어넘어 인간의 모든사고 과정을 기계화하는 계산기를 구상하기도 했습니다.그리고 그는 종교와 철학적인 문제에도 깊이 빠져들었고 라이프니츠는 우리가 사는 혼란과 모순이 가득한세계를'가능한 모든 세계중 최선의 세계'라고 결론지었습니다.그건 완전하고 전능하신 신이 이세상을 선택했기 때문에 무능하고 경험 없는 사람이 고르는 것보다는 유능하고 경륜 있는 사람의 선택이 더 믿을만하듯 완벽한 신이 선택한 세상이 가장좋다는 것입니다.
4년을 걸친 파리 생활 동안 라이프니츠의 과학적 상상력을 펼치기도 하는데 압축공기로 움직이는 엔진, 적의 눈에 띄지 않지 않게 물속으로 가는 배, 나침반 없이도 배의 위치를 계산하는 장치 등이 있습니다. 1675년경에는 수학의 미적분을 발견했다고 공개하여 사람들의 관심도 끌기도 합니다. 그 뒤 자신도 미적분을 발견했다는 뉴턴과 누가 원조인지를 두고 지루한 논쟁을 벌이지만 지금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어느 한쪽이 표절한 것이 아니라 두 천재가 제각각 발견했다고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보이네부르크 남작과 마인츠 선제후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라이프니츠의 파리 생활도 끝이 납니다.

라이프니츠 세상을 떠나다

보이네부르크 남작과 마인츠 선제후의 사망으로 후원이 끊기면서 라이프니츠의 생계가 어려워지자 독일 하노버 프리드리히 공작의 궁정 고문관 겸 도서관 사서로 취직하고 그의 평생직장이 됩니다. 라이프니츠는 3대에 걸쳐 공작 가문을 섬기는데 박학다식한 그는 끊임없이 개선안들 내놓고 새로운 기술 제안을 쏟아 냈으며 실패도 만큼 성공도 많았습니다.
1685년 공작은 평생 연금을 보장해 주는 조건으로 공작 본인 가문의 역사를 쓰라고 지시했고 라이프니츠는 이 작업을 시작으로 탐구할 분야가 점점 넓어지게 되어 역사서술을 위한 자료를 모으기 위해 이곳저곳을 여행하면서 많은 학자와 귀족을 만나게 됩니다. 여러 궁정에 출입하고 귀족들의 계보에 대한 자료를 모을수록 그는 점점 제후들에게 필요한 인물이 되었고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너무 많은 일들을 벌여 놓아서 수습은 잘되지 않았지만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학술원 설립을 위해 황제를 설득하는 데 정성을 쏟아 1711년 드디어 프로이센 아카데미가 탄생하였고 황제로부터 종신 회장으로 임명됩니다. 라이프니츠는 철학자로서는 합리주의의 절정이라 평가받는데 합리주의란 이성과 냉철한 논리로 세상을 설명하고 해석하려는 철학 사조를 말하며 합리주의자들은 이성과 논리로 세상을 해석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어지러운 세상을 질서 있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들 수 있다 확신합니다. 그는 종교와 권력자들 사이에 대립이 지속되었던 30년 전쟁 직후의 매우 혼란한 시대에 혼란한 세계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과 처방을 내린 대표 철학자입니다.
라이프니츠는 1716년 일흔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학자 존 듀이  (0) 2023.05.09
철학자 루소  (0) 2023.05.07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0) 2023.05.02
철학자 헤겔  (0) 2023.05.01
철학자 쇼펜하우어  (0) 2023.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