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차라투르스트는 말하였다.>
니체는 1844년 독일 작센주의 한 시골 마을 뢰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목사 였으며 어머니 역시 이 근처 마을목사의 딸이여서 니체의 집안 분위기는 무척 경건하였습니다. 목사인 아버지는 그가 5세때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 할머니 고모 등 여자들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아버지가 죽은뒤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집착이 심해졌고 여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갈등들은 니체를 힘들게 했습니다. 그의 사상에 줄곧 나타나는 강인한 힘같은 남성다움에 대한 동경은 불안했던 어린 시절에서 비롯된 듯 같습니다. 어린 니체는 공부도 꽤 잘해서 열 네살때는 유명한 슐포르타 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가 수학을 제외하곤 모든 분야애서 뛰어난 성적을 냈지만 아쉽게도 그는 문제아는 아니지만 상담이 필요했던 사교성이 부족한 학생이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존경해주고 존중해주는 소수의 친구들만 사귀었고 줄곧 시와 음악의 세계에 빠져 지냈습니다.

니체 운명적 만남
1864년 니체는 본 대학에 입학하고 스무살 나이에 어울리게 한동안 맥주와 결투로 상징되는 독일의 낭만적인 대학 생활을 하려 했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데 서툰 그는 사람을 사귀는데 쉽지 않았습니다.대학에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기록된 옛날 자료들을 해독하고 분석하는 고전문학학을 전공합니다. 문헌학자로서 유능한 그는 25세 젊은 나이에 스위스의 바젤대학 교수로 발탁 됩니다. 1865년 니체는 유명한 문헌학자인 리츨을 찾아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가서 고전을 다루고 연구하는 문헌학에 빠져 들었습니다. 이 시기 청년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철학과 바그너 음악에 열광했습니다. 한 시골 서점에서 쇼펜하우어의 오래된 책인 의지와 표상으로서 세계를 읽고 강한 충격을 받습니다.니체는 어떤 모임에서 위대한 바그너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되면서 최고의 권위를 누리던 위대한 음악가와 명성을 조금씩 얻기 시작한 풋내기 문헌학도 둘다 쇼펜하우어 사상에 빠져 있다는 점에서 깊은 유대감을 느낍니다. 바그너와의 우정은 니체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고립적이고 자부심 강했던 니체의성격과 자 맞았으며 음악을 최고로 꼽는것도 잘 맞았기 때문입니다. 1869년 리츨의 적극 추천으로 바젤대학의 문헌학 교수로 초빙되어 많은 학생들을 몰고 다니는 인기있는 강사였으며 학자로서 상당한 자질을 보여 다른 유명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거절했습니다. 이 시기 니체에게는 그의 삶에서 구름한점 없는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니체 비극의 탄생
이 행복한 시기가 지난 후 니체는 비판과 무관심속에 소외되는 고난의 길을 들어서게 되는데 그 출발점은 1871년에 스물 일곱에 발표한 <비극의 탄생>이 출발점이 였습니다. 이책은 그리스 비극을 밝히려는 문헌학적 저술책으로 그리스 예술을 아폴론적인것과 다오니소스적인것으로 나누었습니다. 아폴론은 낮에 사는 태양의신이고 디오니소스는 자유분방함과 도취와 술의 신으로 생명의 운동 ,힘의 음침한 흐름이며 그 힘은 일정한 형태가 없는 부정형 에너지이며 이부정형 에너지가 온갖 생명 활동과 예술의 밑바닥에 존재한다는것입니다.그리고 아폴론은 이 흐름에 일정한 형식과 형태를 주는것으로 아폴론적 정신과 디오니소스적 정신의 융합이 그리스정신이라고 니체는 해석하였고 이책을 받은 바그너는 아주 기뻐했지만 대학교수와 학자들은이건 문학이지 논문이 아니라며 비난을 했습니다. 이때 지병이 있던 그는 두통과 눈이 자주 아프고 건강이 더 나빠지면서 동시에 심한 조울증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나이가 들면서 정신상태가 점점 심해져 대학을 휴직을 하지만 상태가 더 나빠져 1879년 그의 나이 35세 나이로 퇴직합니다
니체 미치다. 숨을 거두다.
바젤 대학 교수직을 그만 둔후 니체는 방랑자처럼 건강을 위해 쾌적한 곳과 편안한 곳을 찾아 여행을 계속 했습니다. 쉬는동안 루 안드레아스살로메 등 몇몇여인들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사람 사귀는데 서툴렀던 니체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세련되지 못해 결혼을 생각하고 노력하려고 하지만 철학자에게 결혼은 코미디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끝을 내고 맙니다.건강 상태는 계속 나빠지게 되지만 신기하게도 정신이 무너질수록 그의.대표작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1883년 39세에 차투스트는 이렇게 말했다가 출간됩니다. 차라투스트라는 고대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장인 조로아스터를 독일어 식으로 읽은 말입니다. 이책의 차라투스트라는 조로아수터와는 별 상관이 없으며 유명인 이름을 빌려서 따라한 정도입니다. 이책에서 니체는 고대 이교의 예언자를 주인공으로 소설 같은 사상서를 만들어 신은 죽었다 의미도 목적도 없는 이 세계에서 초인으로 살아가라고 합니다. 인류 전체를 위해서는 위대한 예언이지만 그 시대 시람들에게는 너무도 엄청난 내용이라 받아들여지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책을 쓰고 매우 만족하여 독일어 수준을 한단계 끌어 올렸다고 자부 했습니다.기대와 달리 사회적 반응은 냉담 했고 선뜻 나서는 출판사가 없어 결국 자신의 돈으로 책을 냈지만 거의 팔리지 않았고 그 뒤 여러권의 책을 내지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는 점점 더 우울과 고독속으로 빠져 들어갑니다. 1888년 마흔 네살의 니체는 한 해 동안 여섯권의 중요한 책을 내는데 이 작품들에서는 서늘한 광기가 느껴질 정도로 스스로를 인류 역사를 뒤바꿀 초인으로 부각했습니다. 니체는 결국 파국에 이르게 됩니다. 1889년 광장에서 마부에게 매를 맞고 있는 말을 안고 울다가 갑자기 기절 해버리고 결국엔 미쳐버립니다. 1900년 쉰여섯의 나이로 숨을 거둘때까지 온전한 정신을 회복하지 못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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