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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철학자 플라톤

플라톤과 소크라테스

플라톤 그는 아테네 최고의 정치 명문가에서 태어났습니다. 플라톤의 아버지 아리스 톤은 아테네 왕가의 후예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또한 위대한 정치가 솔론의 후예였습니다. 그의 집안은 뼈대 있는 가문일 뿐 아니라 권력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아테네역사 기록에서 플라톤의 친인척들의 이름이 곧잘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좋은 가문의 청년에게 이테네의 엘리트 코스는 당연한 과정이었으며 정치 지망생에게 군경력은 당연하였으며 그는 기병으로 전쟁에 세 번이나 참가하여 훈장을 탑니다. 스물 살이 되던 해에 멋진 엘리트 청년은 소크라테스를 만나게 되며 그에게 반하게 됩니다. 모두가 타락한 듯한 아테네의 현실에서 끊임없이 진리와 정의를 찾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에 플라톤은 진한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하여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기로 결심합니다. 석수장이 출신의 못생긴 선생과 명문 가문의 귀족제자라는 어울리지 않는 두사람은 8년 동안이다 같이 다니면서 진리를 구합니다. 플리톤이 스물여덟살이 되던 해인 기원전 399년 아테네 시민 500명으로 구성된 법정 젊은이들을 타락시키고 모욕했다는 죄명으로 소크라테스의 사형으로 플라톤은 아주 큰 충격을 받습니다. 플라톤에게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그는 가장 정의로운 이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민주주의의 대해 배반감을 느꼈으며 그에게 민주주의는 다수의 썩은 통치였으며 소크라테스의 수제자였던 플라톤의 안전도 위험한 상황으로 아테네에서 도망쳐 나와 방랑길을 떠났습니다.

아테네에서 빠져나온 뒤에 플라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으나 이 시기에 플라톤은 피타고라스학과 수학자들과 다른 여런 학자들을 만나면서 유명한 이데아 혼을 만들어갑니다.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추구했지만 명확하게 정의 내리지 않았던 절대 진리를 이데아라는 개념으로 구체화하였습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모든 사물에는 각각의 이데아가 있습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보는 사물들은 이데아로 대충 베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진정한 지식은 이성을 통해 알았을 때 얻어진다고 합니다. 구체적인 사물만이 아니라 올바름 정의 같은 추상적인 것에도 이데아가 있으며 어떠한 행동이 정의로운지 그렇지 않은지는 이익을 계산하거나 투표로 정할 수 있으며 그 행동이 정의로움의 이데아를 가지고 있는가 아닌가에 따라 옳고 그름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유익함과 올바름의 이데아 즉 선의 이데아를 알고 있는 사람이 통치를 할때 정의로워진다는 것입니다. 선의 이데아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그건 바로 철학자 입니다. 민주주의라는 허울 아래 자신의 이익만 보는 어리석은 다수가 사회를 통치하면 그 사회는 결코 정의롭지 못하며 타락하게 됩니다. 선의 이데아를 잘 알고 있는 철학자가 권력을 쥐고 통치할때 비로소 사회는 정의로우며 이상 국가에 다다른다는 것입니다. 플라톤의 이런생각을 철인 통치론이라 합니다.

정의로운 국가와 개인은 서로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국가에서 이성에 해당하는 것은 통치자 계급이며 기개는 수호자 게급 욕망은 생산자 계급이며 인간의 영혼처럼 국가도 계급이 질서를 찾을 때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통치자는 지혜의 덕 수호자는 용기의 덕, 생산자는 절제의 덕을 이루어 개인과 사회가 온전히 제 기능을 다하게 되면 정의가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를라톤의 본의의 조국 아테네의 쇠락과 부패를 직접 봐면서 더 극단적인 주장까지 서슴지 않으며 그는 사회가썩은 이유룰 사람들의 욕심 탓이라 생각했습니다

플라톤

플라톤의 아카데미아

기원전 387년, 플랕톤의 나이 마흔살에 자신의 이상을 시험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통치자 디오니 소스1세의 처남 디온이 플라톤의 사상에 감명받아 그를 초청하게 됩니다. 플라톤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디오니소스 1세에게 펼치게 되나 사라쿠사의 독재자는 달갑지 않았으며 결국 강제 추방시킵니다. 사라쿠사에서 쫓겨난플라톤은 12년의 망명 생활을 접고 아테네로 돌아와 정치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으며 대신 아테네 근처에 아카데모스 숲에 죄고의 인재 학교를 열게 되고 이학교는 지역의 이름을 따서 아카데미아라 하였습니다. 아카데미아에서 플라톤은 주로 토론을 통해 철학 기하힉학을 가르쳤으며 그의 교육 목표는 철인통치자를 기르는 데 있었습니다. 사회는 선의 이데아를 이해하는 철학자가 다스릴 때에만 정의로우며 이데아는 냉철한 이성을 갖춘 이들만 알수 있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학생들에게 이성을 키우는 기하학과 철학이 가장 필요한 학문이며 감정을 자극하는 시나 음악은 가르치지 않은편이 좋다고 하였습니다.또한 신체 단련과 현실참여도 중요하다고 강조하였으며 이는 전인교육을 지향했다고 하며 이런 교육관은 서양의 학교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플라톤 세상을 떠나다

기원전 347년 여든살의 나이로 플라톤은 눈을 감습니다. 독을 마셔 사형에 처한스승 소크라테스와 다르게 그는 자연사였습니다. 그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으며 자식도 없으며 그밖의 플라톤의 삶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플라톤의 저술은 대부분 대화의 형태로 되어 있으며 이러한 글들을 대화편이라 합니다. 그의 작품은 과거 유물에 그치지 않고 2,500여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읽고 토론하는 책으로 쓰이고 있으며 기하학, 정치학, 음악, 우주학 등 방대한 주제에 걸쳐 저술을 남겼습니다.

여전히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사는 사람이 정의란 무엇인지, 왜 사회는 정의롭지 못한지 의문을 갖는 것은 당연하며 제대로 된 삶을 살려는 사람에게 올바른 삶은 어떤것인지, 자신의 행동이 올바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는것이 당연하다 합니다. 이런 질문은 완전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시대가 바귀더라도 계속터져 나올것이며 이런 물음들을 처음으로 이론적인 틀을 만들고 정리하고 논리적인 해답을 구했습니다. 모든 발전은 있던 것에 대한 비판과 검토를 통해 얻어지며 눈에 보이는 현실에 포기하지 않고 그 너머의 이데아를 추구하 플라톤 철학은 정의로운 사회와 삶을 위한 하나의 발판으로 여전히 훌륭하게 쓰여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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